본문으로 건너뛰기
정치소설9 / 15편5분

《면역》

9편: 절제술

이타인클럽 · 2026.10.12

도윤은 한동안 단순하게 생각했다.

사회가 병들었다면,

병든 부분을 잘라내면 된다고.

잘못한 정치인이 있으면 쫓아내고,

부패한 사람이 있으면 처벌하고,

거짓말한 사람이 있으면 다시는 같은 자리에 오지 못하게 하면 된다.

암도 그렇게 생각했다.

종양이 있으면 잘라낸다.

끝.

너무 명쾌했다.

도윤은 명쾌한 답을 좋아했다.

복잡한 문제는 사람을 지치게 하지만,

적이 분명하면 마음은 오히려 편해진다.

저 사람이 문제다.

저 조직이 문제다.

저것만 없애면 된다.

어느 날 진료를 마치고 나오는데 병원 복도에서 성호를 다시 만났다.

예전 항암치료실에서 함께 치료받았던 대장암 환자.

얼굴이 많이 수척해져 있었다.

그래도 성호는 먼저 웃었다.

“젊은 양반, 살아 있었네.”

도윤도 웃었다.

“아저씨도요.”

둘은 병원 카페에 앉았다.

도윤이 물었다.

“몸은 좀 어떠세요?”

성호가 종이컵을 손에 쥔 채 말했다.

“간에 있던 건 조금 줄었대.”

“다행이네요.”

“근데 또 봐야지.”

성호는 아주 담담하게 말했다.

“암은 없어졌다고 끝이 아니더라.”

도윤은 그 말을 듣고 잠깐 멈췄다.

“처음에는 수술하셨다고 했죠?”

“응.”

“그때는 완전히 제거한 거 아니었어요?”

“의사도 보이는 건 다 뗐다고 했지.”

성호가 웃었다.

“근데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었나 봐.”

그 말이 도윤의 머릿속에 남았다.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었다.

그날 진료에서 도윤은 담당 의사에게 물었다.

“선생님.”

“네.”

“암은 종양만 다 없애면 치료되는 거 아닌가요?”

의사는 도윤을 바라봤다.

“경우에 따라 수술이 아주 중요한 치료가 되죠.”

“그런데요?”

“암의 종류와 병기에 따라 치료 전략이 다릅니다.”

도윤은 조금 답답했다.

“그러니까 종양을 완전히 떼면 끝나는 경우도 있고 아닌 경우도 있다는 거죠?”

“그렇습니다.”

의사는 모니터를 가리켰다.

“눈에 보이는 종양을 제거했다고 해도 미세하게 남아 있는 암세포가 있을 수 있고, 이미 다른 곳으로 이동한 세포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도윤은 물었다.

“그러면 수술은 의미가 없는 건가요?”

의사가 고개를 저었다.

“그 반대입니다.”

“매우 중요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의사가 잠시 말을 골랐다.

“종양 제거와 병 전체를 이해하는 것은 같은 일이 아닙니다.”

도윤은 그 문장을 머릿속에 새겼다.

집으로 돌아온 그는 노트를 펼쳤다.

가운데 커다란 검은 원을 그렸다.

종양

그리고 펜으로 그 원을 지웠다.

그 아래에 썼다.

끝?

잠시 뒤 물음표를 더 크게 그렸다.

자신은 눈에 보이는 덩어리가 문제의 전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암은 그보다 넓었다.

암세포가 어떻게 살아남는지.

어떻게 혈관을 이용하는지.

어떻게 다른 장기로 이동하는지.

어떤 환경에서 더 잘 자라는지.

몸의 방어체계가 왜 그것을 통제하지 못했는지.

종양은 그 과정의 결과일 수 있었다.

눈에 가장 잘 보이는 결과.

그날 저녁 뉴스에서는 또 누군가가 자리에서 물러났다는 보도가 나왔다.

사람들은 환호했다.

댓글에는 비슷한 말이 줄지어 있었다.

‘이제 끝났다.’

‘드디어 없어졌다.’

‘저 사람만 사라지면 된다.’

도윤도 얼마 전까지 같은 생각을 했다.

한 명을 잡으면 된다.

한 명을 처벌하면 된다.

한 명을 끌어내리면 된다.

그런데 이상하게 성호의 말이 떠올랐다.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었나 봐.

도윤은 뉴스를 끄지 않았다.

그 대신 노트를 펼쳤다.

한 사람의 이름을 쓰지 않았다.

대신 그 사람이 있었던 자리를 적었다.

권한

그 아래.

돈

정보

인사권

감시받지 않는 구조

서로 보호하는 관계

도윤은 한참 그것들을 바라봤다.

사람 하나가 사라져도

자리가 그대로라면?

권한이 그대로라면?

돈의 흐름이 그대로라면?

감시하지 않는 구조가 그대로라면?

다른 사람이 그 자리에 들어가면 어떻게 될까.

도윤은 천천히 펜을 내려놓았다.

다음 날 준호가 찾아왔다.

도윤의 노트를 보더니 물었다.

“이번에는 무슨 연구냐?”

“절제술.”

“또 암?”

“응.”

준호가 웃었다.

“넌 이제 세상 모든 걸 암으로 보는구나.”

도윤도 웃었다.

그러다가 말했다.

“근데 생각해봐.”

“뭘?”

“회사에서 문제 있는 팀장 한 명 잘렸다고 치자.”

“응.”

“그런데 실적을 조작해야 승진하는 구조는 그대로야.”

준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다음 팀장도 똑같이 하지 않을까?”

준호는 잠시 생각했다.

“그럴 수도 있겠지.”

도윤이 말했다.

“그러니까 사람은 바뀌었는데 병은 남는 거야.”

준호가 웃었다.

“또 암이네.”

“맞아.”

도윤도 웃었다.

“종양만 잘라낸 거지.”

그날 밤 도윤은 이재명 관련 영상을 하나 보고 있었다.

누군가를 강하게 비판하는 장면이었다.

도윤은 예전 같았으면 통쾌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잘못한 사람이 있다면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 생각은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다른 질문도 생겼다.

그 사람 다음에는?

도윤은 영상을 멈췄다.

자기 자신에게 물었다.

“한 명을 없애면 끝날까?”

대답은 쉽게 나오지 않았다.

며칠 뒤 항암치료실.

간호사가 약을 연결했다.

도윤은 투명한 약물이 관을 따라 천천히 몸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바라봤다.

종양 하나를 잘라내는 것과는 전혀 다른 방식이었다.

약은 몸 전체를 돌았다.

보이는 곳만 가는 것이 아니었다.

어디에 있을지 모르는 세포들까지 찾아가는 치료.

그 모습을 보면서 도윤은 생각했다.

병이 전신의 문제라면 치료도 전신의 문제여야 한다.

그 문장은 이상하게 사회에도 맞아떨어졌다.

언론만 고친다고 끝날까.

법만 고친다고 끝날까.

정치인 몇 명을 바꾼다고 끝날까.

시민이 그대로라면?

경제 구조가 그대로라면?

권력의 방식이 그대로라면?

도윤은 갑자기 숨이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문제가 너무 커 보였다.

차라리 나쁜 사람 한 명을 찾는 편이 쉬웠다.

그 사람만 없애면 된다고 믿는 편이 편했다.

하지만 암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다.

사회도 아닐지 모른다.

치료를 마치고 병원을 나오는 길.

도윤은 옥상에 잠시 올라갔다.

도시는 여전히 거대했다.

수백만 개의 창문.

수백만 개의 삶.

도윤은 예전에 이 도시를 보며 한 사람을 떠올렸다.

치료자.

구세주.

이재명.

그가 나타나 병든 부분을 잘라내고

사회를 다시 건강하게 만들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 처음으로 다른 질문이 생겼다.

구세주가 아무리 강해도

몸 전체가 병들어 있다면 혼자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집에 돌아온 도윤은 노트에 한 문장을 적었다.

사람을 처벌하는 것은 필요할 수 있다.

그 아래에 적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시스템이 건강해지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크게 썼다.

종양을 제거하는 것과 암을 치료하는 것은 같은 일이 아니다.

한참 뒤,

도윤은 그 문장 아래에 아주 작게 한 줄을 덧붙였다.

그렇다면 진짜 치료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도윤은 아직 답을 몰랐다.

하지만 질문은 다시 한 단계 깊어져 있었다.

처음에는 암세포를 찾았다.

그다음에는 면역을 봤다.

이제는

암세포가 계속 살아남을 수 있게 만드는 환경을 보기 시작하고 있었다.

X에서 원문 보기 ↗

이 편의 숏츠

9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