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윤은 이제 뉴스를 예전처럼 보지 않았다.
기사 하나를 읽으면 원문을 찾았다.
영상이 있으면 앞뒤를 봤다.
사건에는 날짜를 붙였다.
사실과 해석을 따로 적었다.
처음에는 귀찮았다.
그러다 어느 순간 재미있어졌다.
세상이 조금씩 입체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한 사람이 계속 나타났다.
이재명.
처음에는 그냥 이상한 정치인이었다.
왜 이렇게 많은 기사에 등장하는지.
왜 어떤 사람은 그를 몹시 싫어하고,
어떤 사람은 그를 강하게 지지하는지.
도윤은 그게 궁금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자료를 계속 들여다보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그의 눈에는 다른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사건 하나가 아니라,
사건을 만들어내는 구조.
사람 하나가 아니라,
사람을 그렇게 움직이게 만드는 시스템.
도윤은 자신도 모르게 그런 질문을 던지는 정치인의 모습에 눈길이 갔다.
그것은 정확히 자신이 암에 걸린 뒤 시작한 질문과 닮아 있었다.
처음 암 진단을 받았을 때 도윤은 생각했다.
암세포만 없애면 된다.
그런데 암을 공부하면서 질문이 바뀌었다.
왜 이 세포가 생겼을까.
왜 살아남았을까.
왜 몸은 막지 못했을까.
왜 한곳에서 시작한 병이 다른 곳으로 퍼졌을까.
이제 도윤은 사회를 보면서도 비슷한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누가 잘못했을까.
그런데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왜 같은 일이 반복될까.
왜 사람이 바뀌어도 문제가 남을까.
왜 잘못을 막아야 할 기관이 움직이지 않을 때가 있을까.
왜 평범한 사람들까지 어느 순간 거기에 적응해버릴까.
질문이 깊어질수록
도윤은 사회가 거대한 몸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 몸을 고치려고 뛰어드는 한 사람을 자신도 모르게 찾고 있었다.
항암치료가 끝난 어느 오후였다.
도윤은 병원 옥상에 올라갔다.
날씨가 이상하리만큼 좋았다.
멀리 도시가 보였다.
수많은 건물.
도로.
자동차.
사람들.
저 안에 수백만 명이 살고 있었다.
모두 다른 삶을 살고 있지만
전기와 수도와 도로와 법과 경제로 연결되어 있었다.
마치 몸속 장기처럼.
도윤은 휴대전화를 열었다.
또 하나의 정치 영상을 재생했다.
화면 속에는 이재명이 있었다.
도윤은 영상을 끝까지 봤다.
그리고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자신의 생각이 조금씩 변하고 있다는 걸 느꼈다.
예전에는 정치인을 모두 똑같다고 생각했다.
누가 하든 달라질 게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제는 처음으로 이런 생각이 들었다.
혹시 저 사람은 다를까?
그 생각은 위험할 정도로 빨리 커졌다.
도윤은 더 많은 영상을 봤다.
더 많은 자료를 읽었다.
그러면서 자신도 모르게 한 가지 이야기를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병든 사회.
무너진 면역체계.
점점 퍼지는 암세포.
그리고 그것을 고치려고 나타난 사람.
그 구조는 너무 완벽했다.
자신이 경험하고 있는 암과도 너무 닮아 있었다.
어느 날 준호가 병문안을 왔다.
도윤의 노트북에는 정치 관련 자료가 잔뜩 떠 있었다.
준호가 말했다.
“너 이제 완전히 빠졌네.”
“뭐에?”
“그 사람.”
도윤이 웃었다.
“그 정도는 아니야.”
준호가 노트북을 가리켰다.
“이 정도면 거의 팬인데?”
도윤은 대답하지 않았다.
준호가 물었다.
“그 사람이 그렇게 대단해?”
도윤은 한참 생각했다.
그리고 말했다.
“모르겠어.”
“뭐야.”
“근데…”
도윤은 창밖을 바라봤다.
“이 사회가 어디가 아픈지는 아는 사람처럼 보여.”
준호가 웃었다.
“의사냐?”
도윤도 웃었다.
그런데 그 말이 이상하게 마음에 남았다.
의사.
병든 사회의 의사.
그날 밤 도윤은 잠을 이루지 못했다.
항암치료 때문에 몸은 지쳤지만 머리는 이상하게 맑았다.
그는 자기 몸 안을 상상했다.
검은 세포들이 퍼져 있었다.
면역세포는 지쳐 있었다.
어떤 것은 움직이지 않았고,
어떤 것은 방향을 잃었다.
그때 어디선가 한 사람이 나타났다.
그 사람이 몸속을 걷기 시작한다.
병든 곳을 찾는다.
막힌 곳을 연다.
움직이지 않던 세포를 깨운다.
도윤은 자신도 모르게 그 사람의 얼굴을 떠올렸다.
이재명.
꿈인지 상상인지 알 수 없었다.
그 사람은 거대한 몸속을 혼자 걷고 있었다.
사방에서 검은 세포들이 몰려왔다.
하지만 멈추지 않았다.
도윤은 그 모습을 바라보다 생각했다.
저 사람이 고칠 수 있을까?
다음 날.
도윤은 치료를 담당하는 의사에게 질문했다.
“선생님.”
“네.”
“만약 암을 정말 잘 아는 의사가 있으면요.”
의사가 도윤을 바라봤다.
“네.”
“그 의사 한 명이 환자를 살릴 수 있나요?”
의사가 웃었다.
“갑자기 무슨 질문이에요?”
“그냥 궁금해서요.”
의사가 잠시 생각했다.
“혼자는 어렵죠.”
도윤이 눈을 들었다.
“왜요?”
“암 치료는 한 사람이 하는 게 아니니까요.”
의사는 손가락으로 하나씩 세었다.
“혈액종양내과도 필요하고.”
“영상의학과도 필요하고.”
“병리과도 필요하고.”
“간호사도 필요하고.”
“약사도 필요하고.”
“그리고 가장 중요한 사람이 있죠.”
도윤이 물었다.
“누군데요?”
의사가 웃었다.
“환자 본인.”
도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그 말이 계속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환자 본인.
의사가 아무리 뛰어나도
환자가 치료를 거부하면 어렵다.
약이 아무리 좋아도
몸 전체가 버텨주지 못하면 어렵다.
한 사람이 모든 것을 할 수 없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도윤은 그 사실을 정치에 적용하지 않았다.
아직은.
오히려 반대로 생각했다.
그래도 좋은 의사가 필요하다.
환자가 혼자 병을 치료할 수는 없으니까.
사회의 병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누군가는 병을 발견해야 한다.
누군가는 치료를 시작해야 한다.
누군가는 가장 아픈 곳에 손을 대야 한다.
그 역할을 할 사람이 필요하다.
도윤에게는 점점 그 사람이 한 사람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며칠 뒤 치료실 TV에 이재명의 모습이 다시 나왔다.
도윤은 이번에는 채널을 돌리지 않았다.
화면을 바라봤다.
이상했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정치인은 모두 자신과 아무 상관없는 사람들이었다.
화면 속에서 싸우는 사람들.
선거철에만 나타나는 사람들.
자기들끼리 권력을 차지하려고 싸우는 사람들.
그런데 지금은 달랐다.
도윤은 처음으로 정치인을 보면서
자신의 삶을 떠올리고 있었다.
병원비.
회사.
집값.
노동시간.
뉴스.
법.
세금.
안전.
모두 정치와 조금씩 연결되어 있었다.
자신이 정치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고 해서
정치가 자신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그 사실이 조금 무서웠다.
도윤은 노트를 펼쳤다.
몸과 사회를 그린 페이지를 찾았다.
몸.
사회.
면역.
언론.
법.
행정.
시민.
그 가운데 빈 공간이 있었다.
도윤은 잠시 고민하다가 그곳에 한 단어를 썼다.
치료자.
그리고 그 옆에 작은 글씨로 이름을 적었다.
이재명?
물음표가 붙어 있었다.
아직 확신하지 못했다.
하지만 도윤은 그 물음표를 오래 바라봤다.
어쩌면 자신이 찾던 사람이 나타난 것 같았다.
병든 몸의 어디가 아픈지 알고,
종양만 보는 것이 아니라
몸 전체를 보려는 사람.
도윤은 처음으로 생각했다.
저 사람이 이 사회를 고칠 수 있지 않을까.
그날 밤.
도윤은 아주 편안하게 잠들었다.
이상했다.
암 진단 이후 처음이었다.
그동안 자신은 계속 원인을 찾았다.
병을 찾았다.
전이를 두려워했다.
면역체계가 무너지는 것을 상상했다.
그런데 이제는 처음으로
치료를 상상하고 있었다.
누군가가 나타났다.
병든 곳을 발견하고,
망가진 곳을 고치고,
몸 전체를 다시 건강하게 만드는 사람.
도윤은 그 사람에게
자신도 모르게 아주 오래된 이름을 붙였다.
구세주.
하지만 그는 아직 알지 못했다.
암 치료에서 가장 위험한 착각 중 하나는
기적의 치료법 하나가 모든 것을 해결해줄 것이라고 믿는 것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사회에서도
그 착각은 똑같이 반복될 수 있다는 사실을.
구세주를 발견했다고 믿은 순간,
도윤은 새로운 함정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