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암치료를 받는 날은 시간이 느리게 갔다.
약물이 몸 안으로 들어가는 동안 도윤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잠을 자거나.
휴대전화를 보거나.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거나.
처음에는 암에 관한 자료만 읽었다.
림프종.
항암제.
면역.
재발.
전이.
하지만 몇 주가 지나자 더 이상 읽고 싶지 않은 날도 생겼다.
암에 관한 글을 읽을수록 자신의 몸 안에 암이 있다는 사실을 계속 확인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어느 날부터 그냥 뉴스를 보기 시작했다.
손가락으로 화면을 넘겼다.
연예인.
스포츠.
부동산.
사건 사고.
정치.
도윤은 정치 기사가 나오면 거의 반사적으로 넘겼다.
원래 그랬다.
누가 싸웠다.
누가 잘못했다.
누가 거짓말했다.
매일 똑같아 보였다.
그러던 날이었다.
어떤 정치인의 이름이 계속 눈에 들어왔다.
이재명.
한 기사에서는 아주 위험한 사람처럼 묘사되어 있었다.
다른 기사에서는 완전히 다른 평가가 붙어 있었다.
댓글도 극단적이었다.
누군가는 그를 증오했고,
누군가는 강하게 지지했다.
도윤은 화면을 내렸다.
다음 기사.
또 이재명.
몇 개를 지나갔다.
또 이재명.
“뭐야.”
도윤이 중얼거렸다.
그 정치인이 특별해서가 아니었다.
이상한 것은 기사들이었다.
같은 사람을 두고 어떻게 이렇게까지 다른 이야기가 나올 수 있지?
평소 같았다면 그냥 넘겼을 것이다.
정치란 원래 그런 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암에 걸린 뒤 도윤에게 이상한 습관이 하나 생겼다.
원인을 확인하는 습관.
누군가 몸에 좋다고 하면 근거를 찾았다.
누군가 어떤 음식 때문에 암에 걸렸다고 하면 자료를 확인했다.
인터넷 글 하나를 그대로 믿지 않았다.
그렇게 하지 않았다가는
두려움 때문에 무엇이든 믿어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도윤은 기사를 다시 열었다.
한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강한 표현이었다.
도윤은 문득 생각했다.
이 말은 어디에서 나온 거지?
아래로 내려갔다.
출처를 찾았다.
다른 기사를 열었다.
또 다른 표현이 있었다.
이번에는 원래 발언을 검색했다.
영상도 찾아봤다.
앞뒤 몇 분을 더 봤다.
그리고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짧게 잘라놓은 문장과
전체 맥락에서 들은 말의 인상이 조금 달랐다.
도윤은 휴대전화를 내려놓았다.
그 순간 병원에서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처음 CT 영상을 본 날이었다.
모니터에 하얀 덩어리가 보였다.
도윤은 그것만 보고 물었다.
“저게 암인가요?”
하지만 의사는 CT 하나만으로 모든 것을 결정하지 않았다.
혈액을 검사했다.
PET-CT를 찍었다.
조직을 떼어냈다.
현미경으로 확인했다.
여러 결과를 겹쳐 보고서야 진단했다.
도윤은 그때 처음 알았다.
사진 한 장은 사실일 수 있다.
그러나
사진 한 장이 전체 진실이라는 뜻은 아니다.
도윤은 다시 휴대전화를 집었다.
기사 제목을 바라봤다.
갑자기 그것들이 CT 한 장처럼 보였다.
어쩌면 사실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사람 전체를 판단할 수 있을까?
“뭐 그렇게 봐요?”
옆자리 환자가 물었다.
도윤이 화면을 끄며 말했다.
“정치 뉴스요.”
“젊은 사람이 그런 것도 봐요?”
도윤이 웃었다.
“원래 안 봐요.”
“그럼 왜 봐?”
도윤은 잠깐 생각했다.
“이상해서요.”
“뭐가?”
“같은 사람인데 기사마다 사람이 완전히 달라요.”
옆자리 남자가 웃었다.
“정치가 원래 그렇지.”
도윤의 표정이 잠깐 굳었다.
원래 그렇지.
또 그 말이었다.
회사에서도 들었다.
“원래 다 그래요.”
병든 시스템을 생각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이상하게 자주 들리는 말.
도윤은 이제 그 말을 그냥 지나치기 어려웠다.
그날 밤 집에서 노트를 펼쳤다.
왼쪽에는 암 진단 과정을 적었다.
증상
↓
검사
↓
영상
↓
조직검사
↓
진단
오른쪽에는 정치 뉴스를 적었다.
사건
↓
기사
그리고 멈췄다.
그 아래가 없었다.
도윤은 한참 생각하다가 직접 적었다.
↓
원문
↓
전체 맥락
↓
다른 자료
↓
판단
그림을 바라보다가 혼잣말했다.
“이것도 조직검사를 해야 하는 건가.”
웃음이 나왔다.
정치인을 조직검사한다는 표현이 우스웠다.
하지만 뜻은 명확했다.
겉으로 보이는 것만 보고 판단하지 않는 것.
그 뒤로 도윤은 이상한 놀이를 시작했다.
기사 하나를 보면
원문을 찾아봤다.
정치인의 발언을 보면
앞뒤 맥락을 찾아봤다.
누군가 어떤 사건을 설명하면
반대쪽 설명도 찾아봤다.
처음에는 이재명이 궁금해서 시작했다.
그런데 점점 다른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정치인보다
정치인을 보여주는 방식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어떤 사실이 제목이 되고,
어떤 사실은 제목에서 빠지는지.
어떤 문장은 반복되고,
어떤 문장은 거의 전달되지 않는지.
도윤은 자신이 보고 있다고 생각했던 세상이
사실은 누군가가 골라놓은 장면들의 조합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처음 했다.
그 생각은 불편했다.
며칠 뒤 친구 준호와 통화했다.
준호가 물었다.
“요즘 뭐 하고 지내?”
“항암 받고.”
“그거 말고.”
도윤이 잠깐 웃었다.
“정치 공부.”
전화기 너머가 조용해졌다.
“너?”
“왜.”
“한도윤이 정치?”
“나도 모르겠다.”
준호가 웃었다.
“갑자기 누구 지지라도 하냐?”
도윤은 바로 대답했다.
“아니.”
잠시 후 덧붙였다.
“그냥 확인하고 있어.”
“뭘?”
도윤은 대답하려다가 멈췄다.
자신도 정확하게 무엇을 확인하는지 몰랐다.
이재명이라는 사람?
언론?
정치?
아니면
자신이 지금까지 세상을 바라본 방식?
도윤이 말했다.
“내가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게 진짜 맞는지.”
준호는 잠시 말이 없었다.
그날 밤 도윤은 오래전 자신의 말을 떠올렸다.
“정치가 나랑 무슨 상관인데?”
이제는 조금 다르게 들렸다.
정치가 자신에게 영향을 주는지조차 확인해본 적이 없으면서
상관없다고 결정해버린 말이었다.
암도 그랬다.
암에 걸리기 전에는 면역세포가 무엇인지 몰랐다.
림프절이 어디 있는지도 몰랐다.
그러면서 자기 몸은 건강하다고 생각했다.
관심이 없다는 것과
문제가 없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었다.
도윤은 노트 맨 아래 한 문장을 적었다.
모른다는 것보다 위험한 것은
잠시 멈췄다가 이어 썼다.
알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잠자리에 들기 전,
도윤은 마지막으로 휴대전화를 열었다.
화면에는 또 이재명의 얼굴이 있었다.
도윤은 이번에는 기사를 바로 믿지도,
바로 의심하지도 않았다.
제목을 읽었다.
그리고 화면 아래쪽에 있는 링크를 눌렀다.
원문 보기.
도윤은 아직 그 사람을 좋아하지도 않았다.
싫어하지도 않았다.
다만 처음으로
남이 보여준 사람과
자신이 직접 확인한 사람이
같은 사람인지 궁금해지고 있었다.
암을 만난 뒤
도윤은 처음으로 자기 몸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제,
처음으로
자기가 살고 있는 사회를
직접 들여다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