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암치료실에서 도윤은 박성호를 만났다.
쉰여섯 살.
대장암 환자였다.
처음 만났을 때 그는 환자 같지 않았다.
간호사가 주삿바늘을 꽂는 동안에도 휴대전화로 야구를 봤고, 도시락을 먹으면서 간호사에게 농담을 했다.
“이거 끝나면 삼겹살 먹어도 됩니까?”
간호사가 웃었다.
“선생님은 맨날 그것만 물어보세요.”
도윤은 그 모습을 보면서 조금 안심했다.
암에 걸려도 저렇게 웃을 수 있구나.
성호는 도윤이 스물아홉이라는 말을 듣고 한동안 말이 없었다.
“너무 젊은데.”
도윤은 이제 그 말이 싫지 않았다.
처음에는 억울했지만,
요즘은 그냥 사실이라고 생각했다.
성호가 물었다.
“처음이지?”
“뭐가요?”
“항암.”
도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성호가 말했다.
“겁먹지 마. 사람 생각보다 질겨.”
그 말이 마음에 들었다.
사람은 생각보다 질기다.
두 사람은 치료 날짜가 몇 번 겹쳤다.
성호는 올 때마다 이야기가 많았다.
아들이 취업을 했다는 이야기.
아내가 건강식품을 너무 많이 사온다는 이야기.
암 수술을 받고 처음에는 이제 끝난 줄 알았다는 이야기.
“의사가 종양 다 떼냈다고 했거든.”
도윤이 물었다.
“그럼 왜 항암치료 받으세요?”
성호가 잠깐 웃었다.
“간에 갔대.”
도윤은 무슨 말인지 바로 이해하지 못했다.
“뭐가요?”
“암이.”
성호가 손가락으로 배 오른쪽을 가리켰다.
“대장에 있던 놈이 간까지 갔다잖아.”
도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성호는 별일 아니라는 듯 다시 야구 화면을 켰다.
“그러니까 잡을 때 확실히 잡아야 돼.”
하지만 도윤은 그날부터 ‘전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검색했다.
암 전이 원리
암세포가 원래 있던 조직을 벗어난다.
주변 조직으로 침투한다.
혈관이나 림프관으로 들어간다.
몸의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
그곳에서 살아남으면 다시 자란다.
도윤은 그림 하나를 한참 바라봤다.
처음에는 점 하나였다.
한곳에 모여 있던 작은 덩어리.
그런데 어느 순간 경계를 뚫었다.
혈관을 타고 이동했다.
그리고 전혀 다른 장기에 새로운 자리를 만들었다.
도윤은 갑자기 무서워졌다.
암이 무서운 이유가 조금 달리 보였다.
암세포가 강해서만이 아니었다.
몸 전체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혈관은 원래 산소와 영양분을 전달하기 위해 존재했다.
림프관은 몸을 보호하기 위한 시스템의 일부였다.
그런데 암은 그 길을 이용했다.
몸을 살리기 위해 만들어진 길이
병을 퍼뜨리는 길이 될 수도 있었다.
며칠 뒤 회사 동료 민석에게 전화가 왔다.
“형, 심심하지?”
“좀.”
“회사 얘기 해줄까?”
“그건 안 심심해도 듣기 싫은데.”
둘이 웃었다.
민석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팀장이 바뀌었다.
프로젝트 일정이 밀렸다.
지난번 보고서 숫자 때문에 감사팀에서 확인이 들어왔다.
도윤은 몸을 일으켰다.
“그 숫자?”
“어. 근데 웃긴 게 뭔지 알아?”
“뭔데?”
“우리 팀만 그런 게 아니래.”
민석이 목소리를 낮췄다.
“다른 본부도 비슷하게 맞췄대.”
도윤은 잠시 말을 잃었다.
며칠 전 회의실에서 들었던 목소리가 떠올랐다.
‘그냥 지난달 숫자로 넣어.’
그때는 한 팀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한 명의 상사.
한 장의 보고서.
그런데 아니었다.
“왜 다 그렇게 했는데?”
도윤이 물었다.
민석이 대답했다.
“위에서 목표 숫자를 먼저 정했대.”
도윤의 손이 멈췄다.
“결과를 보고 목표를 정한 게 아니라?”
“반대지.”
민석이 웃었다.
“목표가 먼저고 데이터가 나중.”
도윤은 웃지 않았다.
전화를 끊고 노트를 펼쳤다.
가운데 작은 동그라미 하나를 그렸다.
한 팀의 잘못
그 옆에 화살표를 그었다.
본부
또 화살표.
경영진
또 화살표.
보고서
또 화살표.
외부 발표
도윤은 한참 그 그림을 바라봤다.
작은 거짓말 하나가
조직을 따라 이동하고 있었다.
사람에서 사람으로.
부서에서 부서로.
보고서에서 보고서로.
처음에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였던 것이
다른 곳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그곳에서 다시 커졌다.
그 순간 단어 하나가 떠올랐다.
전이.
도윤은 고개를 저었다.
“또 암이랑 엮고 있네.”
그런데 이번에는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그날 저녁 뉴스에서는 서로 아무 관계 없어 보이는 사건들이 쏟아졌다.
어떤 기업의 비리.
그 기업과 관련된 정치인의 이름.
수사기관의 판단.
그 수사를 비판하는 언론.
그 기사를 공유하며 싸우는 사람들.
평소 같으면 하나씩 따로 봤을 장면들이었다.
그런데 도윤에게는 처음으로 연결되어 보였다.
기업.
정치.
법.
언론.
시민.
각각 떨어진 장기가 아니었다.
서로 피를 주고받고,
정보를 주고받고,
돈을 주고받고,
영향을 주고받았다.
모두 하나의 몸 안에 있었다.
한곳이 병들면
그 병이 다른 곳으로 가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었다.
도윤은 TV를 껐다.
다음 항암치료 날.
성호의 자리가 비어 있었다.
도윤은 별생각 없이 간호사에게 물었다.
“저번에 저기 계시던 분 오늘 안 오세요?”
간호사가 잠깐 멈췄다.
“박성호 선생님이요?”
“네.”
간호사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검사 결과 때문에 입원하셨어요.”
“많이 안 좋으세요?”
간호사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 침묵만으로 충분했다.
도윤은 한참 빈 의자를 바라봤다.
그곳에는 지난주까지 성호가 앉아 있었다.
야구를 보고,
삼겹살 이야기를 하고,
사람은 생각보다 질기다고 말하던 사람.
그날 치료 내내 도윤은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처음으로 죽음이 아주 가까이 와 있었다.
암은 한 장기의 병이 아니었다.
퍼지기 시작하면
몸 전체가 그 대가를 치렀다.
그날 밤 도윤은 노트에 적었다.
전이는 암세포가 이동하는 것만을 뜻하지 않는다.
잠시 생각하다 그 아래에 덧붙였다.
병든 것이 연결망을 타고 다른 곳까지 병들게 하는 것.
그리고 또 하나.
몸에는 완전히 독립된 장기가 없다.
펜이 멈췄다.
도윤은 마지막 문장을 한참 바라봤다.
그러다 그 아래에 아주 작게 적었다.
사회에도 완전히 독립된 문제는 없는 것 아닐까?
언론의 문제는 언론에서 끝날까.
법의 문제는 법원에서 끝날까.
기업의 탐욕은 기업 안에서 끝날까.
정치의 문제는 정치인들끼리의 문제일까.
도윤은 자신이 얼마 전까지 자주 했던 말을 떠올렸다.
“정치가 나랑 무슨 상관인데?”
갑자기 그 말이 이상하게 들렸다.
간에 생긴 암세포가 심장에게 말하는 것 같았다.
“대장에서 시작했는데 네가 무슨 상관이야.”
도윤은 노트를 덮었다.
그날 처음으로 그는 생각했다.
어쩌면 정치란
자신과 상관없는 멀리 떨어진 장기가 아니라,
자신도 함께 살아가고 있는
한 몸의 일부인지도 모른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