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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소설4 / 15편5분

《면역》

4편

이타인클럽 · 2026.09.30

“림프종이 정확히 뭐예요?”

도윤이 물었다.

암이라는 말을 들은 지 몇 주가 지났지만 이상하게도 그 질문은 이제야 나왔다.

처음에는 중요하지 않았다.

무슨 암이든 암이었다.

살 수 있는지.

치료가 되는지.

머리가 빠지는지.

회사에는 언제 돌아갈 수 있는지.

그것만 궁금했다.

하지만 암에 대해 알면 알수록 도윤은 자신의 병 자체가 궁금해졌다.

왜 하필 림프종일까.

의사는 모니터에 그림 하나를 띄웠다.

목과 겨드랑이, 가슴, 배를 따라 작은 점들이 이어져 있었다.

“림프계입니다.”

도윤이 화면을 들여다봤다.

“우리 몸의 면역 시스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조직들이죠.”

의사는 설명을 이어갔다.

림프절.

림프구.

B세포.

T세포.

도윤이 지난 며칠 동안 인터넷에서 수도 없이 본 단어들이었다.

그런데 직접 설명을 들으니 느낌이 달랐다.

“그러면…”

도윤이 물었다.

“제 암은 면역이 약해서 생긴 암인가요?”

“그렇게 단순하게 말할 수는 없습니다.”

또 그 말이었다.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이제는 익숙했다.

의사가 말했다.

“림프종은 면역계에 속한 림프구라는 세포에서 발생하는 암입니다.”

도윤이 잠깐 멈췄다.

“면역세포가 암세포가 된 거네요?”

“쉽게 표현하면 그렇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도윤은 의사의 다음 설명을 거의 듣지 못했다.

머릿속에 한 문장만 남았다.

나를 지켜야 할 세포가 암이 됐다.

그날 병원 카페에서 도윤은 한참 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커피는 이미 식어 있었다.

그동안 그는 암을 외부에서 침입한 적처럼 생각했다.

어딘가에서 나쁜 것이 들어왔다.

그것이 자기 몸을 공격했다.

그러니 찾아내서 제거하면 된다.

그런데 자신의 암은 조금 달랐다.

처음부터 자신의 몸에 있던 세포였다.

그것도 아무 세포가 아니었다.

몸을 지키는 일에 참여하던 세포.

외부의 침입자를 발견하고,

이상 신호에 반응하고,

몸의 질서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세포.

그런 세포가 변했다.

도윤은 소름이 돋았다.

적이 성벽 밖에 있는 것과

성벽을 지키던 병사가 변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집에 돌아온 도윤은 다시 노트를 펼쳤다.

며칠 전 적어놓은 문장이 보였다.

건강한 시스템은 이상을 발견하고 통제하는 시스템이다.

그 아래에 새로 썼다.

그 시스템 자체가 병들면?

펜 끝이 멈췄다.

잠시 후 또 적었다.

몸을 지켜야 할 세포가 변하면 누가 몸을 지키지?

그 질문은 생각보다 오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도윤은 습관처럼 휴대전화를 켰다.

뉴스 알림이 쏟아졌다.

사건.

사고.

기업 비리.

재판.

정치인의 발언.

경제 전망.

평소 같으면 제목 몇 개만 훑고 닫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한 기사에서 손이 멈췄다.

어떤 기관의 잘못을 다른 기관이 조사한다는 내용이었다.

도윤은 문득 생각했다.

사회에도 면역체계 같은 것이 있나?

처음에는 스스로도 웃겼다.

암 공부를 너무 많이 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

사람이 다른 사람의 돈을 빼앗으면 경찰이 있다.

권력을 함부로 사용하면 법이 있다.

기업이 잘못하면 감독기관이 있다.

정부가 잘못하면 언론이 감시한다.

정치인이 잘못하면 시민이 판단한다.

하나가 잘못되면

다른 하나가 발견하고,

견제하고,

수정한다.

도윤은 천천히 침대에서 일어났다.

이상했다.

몸에서 보던 구조와 닮아 있었다.

하나의 장치가 아니라

여러 겹의 방어선.

세포 하나의 실수를 다른 세포가 발견하고,

한 기관의 오류를 다른 기관이 견제하는 구조.

사회에도 면역체계가 있었다.

도윤은 노트 한쪽에 사람 몸을 그렸다.

반대편에는 도시를 그렸다.

그 사이에 선을 그었다.

몸.

사회.

그리고 하나씩 연결했다.

면역 감시.

언론.

방어기전.

법.

조절.

행정.

기억.

기록.

도윤은 한참 그림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내가 지금 뭐 하는 거야.”

암 치료를 받아야 할 사람이 갑자기 사회 구조를 그리고 있었다.

노트를 덮었다.

하지만 몇 초 뒤 다시 열었다.

한 가지 질문이 남아 있었다.

그렇다면 사회의 면역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그날 오후 도윤은 친구 준호를 만났다.

암 진단 이후 친구들을 피했지만 준호가 계속 연락했다.

“얼굴이라도 보자.”

둘은 회사 근처 식당에 앉았다.

준호가 물었다.

“몸은 좀 어때?”

“아직 멀쩡해.”

“근데 얼굴은 왜 그렇게 심각해?”

도윤이 웃었다.

“이상한 생각 하나 하고 있었어.”

“뭔데?”

“사회에도 면역체계가 있을까?”

준호가 젓가락을 멈췄다.

“항암제 맞더니 철학자가 됐냐?”

둘이 웃었다.

도윤이 말했다.

“아니, 생각해봐.”

“우리 몸에는 이상한 세포가 생겨도 그걸 잡는 장치가 있잖아.”

“응.”

“사회에도 이상한 사람이 생길 거 아니야.”

준호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당연하지. 미친놈이 얼마나 많은데.”

“그런데 그게 중요한 게 아닌 것 같아.”

“뭐가?”

도윤은 잠시 생각했다.

“그 사람을 막는 게 작동하느냐는 거지.”

준호가 웃었다.

“갑자기 왜 정치 얘기야?”

도윤이 바로 대답했다.

“정치 얘기 아닌데?”

그리고 잠시 멈췄다.

정말 정치 이야기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자신은 단지 암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

도윤은 사람들을 바라봤다.

휴대전화를 보는 사람.

졸고 있는 사람.

퇴근하는 사람.

웃는 사람.

이어폰을 끼고 영상을 보는 사람.

모두 자기 삶을 살고 있었다.

도윤도 얼마 전까지 그중 한 명이었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월급만 들어오면 됐다.

회사만 망하지 않으면 됐다.

법은 법조인이 알아서 하고,

정치는 정치인이 알아서 하고,

뉴스는 기자가 알아서 정확하게 전달해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의 몸도 똑같았다.

심장은 알아서 뛰었다.

간은 알아서 일했다.

면역세포도 알아서 자신을 지켜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한 번도 확인하지 않았다.

한 번도 궁금해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암에 걸렸다.

도윤은 지하철 창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바라봤다.

그리고 갑자기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몸은 병들기 전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사회는?

그날 밤.

도윤은 아주 이상한 꿈을 꾸었다.

거대한 도시였다.

수많은 사람들이 거리를 걷고 있었다.

그 사이로 검은 점 하나가 움직였다.

아무도 보지 못했다.

점은 사람 하나에게 붙었다.

둘이 됐다.

넷이 됐다.

수십 개가 됐다.

거리 곳곳에는 감시자들이 있었다.

높은 탑 위에서 도시를 바라보는 사람.

법전을 들고 있는 사람.

제복을 입은 사람.

카메라를 든 사람.

도윤은 소리쳤다.

“저기요!”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저거 안 보여요?”

한 감시자가 잠깐 검은 점을 바라봤다.

그리고 고개를 돌렸다.

다른 감시자도 지나쳤다.

검은 점은 계속 늘어났다.

도윤이 그중 한 사람의 팔을 붙잡았다.

“왜 아무것도 안 해요?”

남자가 도윤을 바라봤다.

그리고 아주 태연하게 말했다.

“아직 큰 문제 아니잖아요.”

도윤은 잠에서 깼다.

심장이 빠르게 뛰고 있었다.

잠시 천장을 바라봤다.

그리고 침대 옆 노트를 집어 들었다.

어둠 속에서 한 문장을 적었다.

병은 나쁜 것이 존재해서 생기는 게 아닐지도 모른다.

그 아래에 한 줄을 더 썼다.

그것을 막아야 할 것이 움직이지 않을 때, 병은 시작된다.

도윤은 펜을 내려놓았다.

자신이 암을 공부하고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가 들여다보고 있는 것은

자기 몸만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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