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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소설3 / 15편4분

《면역》

3편: 매일 생기는 이상

이타인클럽 · 2026.09.29

도윤은 암에 걸리고 나서 자기 몸을 믿지 못하게 되었다.

샤워를 하다가도 목을 만졌다.

양치하다가 거울 속 얼굴을 오래 바라봤다.

조금 피곤하면 생각했다.

또 어디선가 자라고 있는 건 아닐까.

배가 아파도 암 같았다.

머리가 아파도 암 같았다.

허리가 뻐근해도 불안했다.

몸 전체가 적처럼 느껴졌다.

불과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아무 생각 없이 가지고 다니던 몸이었다.

이제는 그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 수 없다는 사실이 두려웠다.

도윤은 밤마다 암에 관한 자료를 읽었다.

어려운 단어가 나오면 다시 검색했다.

돌연변이.

세포 주기.

세포 사멸.

면역 감시.

DNA 손상.

하나를 이해하면 모르는 것이 세 개씩 늘어났다.

그러다 어느 날 한 가지 사실 앞에서 오래 멈췄다.

우리 몸의 세포는 끊임없이 분열한다.

수많은 세포가 생기고 사라진다.

그 복잡한 과정에서 오류가 생길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오류가 생겼다고 모두 암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세포 자체에도 이상을 감지하는 장치가 있고,

문제가 심하면 스스로 분열을 멈추거나 죽기도 한다.

몸의 면역체계도 비정상적인 세포를 감시한다.

여러 겹의 안전장치였다.

도윤은 노트에 동그라미를 하나 그렸다.

그 안에 작은 점을 찍었다.

이상 세포.

그리고 그 주위에 여러 겹의 원을 그렸다.

첫 번째 원. 세포 자체의 방어.

두 번째 원. 면역체계.

세 번째 원. 주변 조직의 환경.

한참 그림을 보던 도윤은 혼잣말했다.

“이걸 다 뚫었다는 거네.”

그 말이 이상하게 무서웠다.

암세포 하나가 무서운 것이 아니었다.

그 하나가 여기까지 오는 동안수많은 문을 지나왔다는 것이 무서웠다.

다음 날 병원에서 혈액검사를 기다리는데 옆자리의 어린아이가 계속 울었다.

대여섯 살쯤 되어 보였다.

아이의 어머니가 말했다.

“조금만 참자. 이것만 하면 돼.”

도윤은 아이를 바라보다가 시선을 피했다.

예전 같았으면 생각했을 것이다.

어린애가 무슨 암이야.

하지만 이제 그런 생각을 할 수 없었다.

몸은 나이를 묻고 움직이는 기계가 아니었다.

그 안에서는 언제나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중요한 것은 변화가 전혀 일어나지 않는 몸이 아니었다.

이상이 생겼을 때그것을 찾아내고,멈추고,고치는 능력이었다.

그날 도윤은 처음으로 이런 생각을 했다.

건강하다는 것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상태가 아닐지도 모른다.

무언가 잘못됐을 때 그것을 바로잡을 수 있는 상태.

그것이 건강일지도 몰랐다.

며칠 뒤 도윤은 잠시 회사에 들렀다.

치료 일정을 정리하고 노트북도 가져와야 했다.

한 달도 지나지 않았는데 회사는 이상할 정도로 똑같았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사람들이 커피를 들고 있었다.

회의실에서는 누군가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복사기는 종이를 뱉어냈고,메신저에는 수십 개의 알림이 떠 있었다.

자신이 없어도 아무 일 없이 돌아가는 회사가 조금 서운하면서도 안심됐다.

자리에서 물건을 정리하는데 옆 팀의 후배 민석이 다가왔다.

“형, 괜찮아요?”

“응. 치료하면 된대.”

민석은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 잠깐 머뭇거렸다.

“다행이네요.”

도윤이 웃었다.

“암인데 뭐가 다행이야.”

둘 다 어색하게 웃었다.

그때 회의실 쪽에서 큰 목소리가 들렸다.

“그냥 지난달 숫자로 넣어.”

누군가 말했다.

“근데 실제 수치는 그게 아닌데요.”

곧 다른 목소리가 들렸다.

“누가 그걸 일일이 확인해?”

잠시 정적.

그리고 웃음소리.

민석이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저 팀 또 저러네.”

도윤은 회의실 쪽을 바라봤다.

“저래도 돼?”

민석이 어깨를 으쓱했다.

“원래 다 그렇죠.”

원래 다 그렇다.

도윤은 그 말을 들은 순간 이상하게 불편했다.

예전에는 자신도 자주 하던 말이었다.

회사란 원래 그렇다.

세상이 원래 그렇다.

사람들이 다 그렇게 한다.

그런데 병원에서 읽었던 문장이 떠올랐다.

이상이 생기는 것 자체보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살아남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회의실에서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회의가 계속됐다.

누구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잘못된 숫자는 보고서에 들어갈 것이다.

그 보고서를 또 누군가 볼 것이다.

그리고 다음 달에는 그것이 지난달의 기준이 될지도 모른다.

도윤은 잠깐 멍하니 서 있었다.

이상한 생각이었다.

작은 오류 하나.

아무도 막지 않은 오류.

처음에는 별것 아닐 수 있다.

하지만 계속 살아남으면?

집으로 돌아온 도윤은 다시 노트를 펼쳤다.

어제 그렸던 그림이 있었다.

가운데 작은 점.

그 주변을 둘러싼 여러 개의 방어선.

그는 작은 점 옆에 한 문장을 적었다.

이상은 언제나 생긴다.

조금 아래에 또 적었다.

건강한 시스템은 이상을 없애는 시스템이 아니라, 이상을 발견하고 통제하는 시스템이다.

그리고 잠시 생각하다 마지막 문장을 적었다.

그렇다면 병든 시스템은 무엇일까?

펜이 멈췄다.

머릿속에 회사 회의실이 떠올랐다.

“그냥 지난달 숫자로 넣어.”

“누가 그걸 일일이 확인해?”

“원래 다 그렇죠.”

도윤은 노트를 덮었다.

아직 그 생각을 더 이어가고 싶지 않았다.

자신은 암 환자였다.

지금 중요한 것은 정치도,사회도,회사도 아니었다.

살아남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암을 이해하려고 할수록자꾸 몸 밖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날 밤 도윤은 잠들기 전 자기 몸속을 상상했다.

정상세포들 사이에서 이상한 세포 하나가 생긴다.

경고 신호가 켜진다.

면역세포가 다가온다.

그리고 잠시 멈춘다.

그런데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

그냥 지나간다.

뒤에 있던 세포도 지나간다.

또 지나간다.

이상세포는 살아남는다.

한 번 분열한다.

두 개.

다시 분열한다.

네 개.

여덟 개.

열여섯 개.

도윤은 눈을 떴다.

그리고 처음으로 암이 무섭다는 생각과는 조금 다른 두려움을 느꼈다.

괴물이 생기는 것보다 더 무서운 것은괴물을 보고도 아무도 움직이지 않는 것이 아닐까.

그 질문은 아직 그의 몸 안에 머물러 있었다.

하지만 아주 조금씩,몸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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