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윤은 암이라는 말을 들은 뒤부터 모든 것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커피.
야식.
플라스틱 용기.
전자레인지.
회사 앞 미세먼지.
지난겨울 독감.
몇 년 전 걸렸던 코로나.
심지어 책상 옆에 놓인 무선충전기까지.
이 중 하나는 범인일 것 같았다.
아니.
범인이어야 했다.
그래야 마음이 편했다.
도윤은 병가를 냈다.
팀장은 예상보다 쉽게 허락했다.
“일단 치료 잘 받아. 회사 걱정하지 말고.”
평소라면 고마웠을 말인데 이상하게 아무 감정도 들지 않았다.
회사가 걱정되지 않았다.
회사에서 자신이 사라져도 일은 돌아갈 것이다.
회의는 열릴 것이고, 보고서는 작성될 것이며, 자신이 맡았던 업무는 다른 사람에게 넘어갈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몸은 달랐다.
대신 살아줄 사람이 없었다.
도윤은 하루 종일 검색했다.
림프종 원인
유전.
바이러스.
면역 이상.
환경적 요인.
특정 화학물질.
그리고 또 다른 페이지에서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정확한 원인을 알 수 없는 경우가 많다.
도윤은 그 문장이 싫었다.
원인을 모른다는 건 답이 없다는 뜻처럼 들렸다.
그는 진료실에서 의사에게 물었다.
“제가 뭘 잘못한 건가요?”
의사가 도윤을 바라봤다.
“무슨 뜻이에요?”
“담배도 안 피우고요. 술도 그렇게 많이 안 마시고요. 가족력도 없어요.”
도윤은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
“그런데 왜 제가 암에 걸린 거죠?”
의사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도윤은 그 침묵이 싫었다.
이번에도 명확한 답을 주지 않을 것 같았다.
“암은 원인을 하나로 설명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도윤의 표정이 굳었다.
“그래도 뭔가 원인이 있으니까 생긴 거 아닙니까?”
“물론 여러 요인이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그 여러 요인 중에 제 원인은 뭔데요?”
의사는 고개를 저었다.
“그걸 정확히 하나로 지정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도윤은 짜증이 났다.
“그러니까 그냥 운이 나빴다는 거예요?”
의사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그렇게 단순하지도 않습니다.”
그 말은 더 짜증 났다.
단순하지 않다.
정확히 모른다.
여러 요인이 있다.
도윤에게는 모두 같은 말처럼 들렸다.
모른다는 말.
집으로 돌아온 도윤은 다시 검색을 시작했다.
이번에는 더 깊게 들어갔다.
암세포.
유전자 변이.
세포 분열.
면역 감시.
종양 미세환경.
처음 보는 단어들이 계속 나왔다.
그는 몇 시간 동안 읽다가 한 가지 이상한 사실을 발견했다.
암은 단순히 ‘나쁜 세포 하나가 갑자기 등장하는 사건’이 아니었다.
세포는 원래 끊임없이 분열한다.
그 과정에서 변화가 생길 수 있다.
문제가 있는 세포는 스스로 죽기도 하고,
몸의 여러 방어 체계에 의해 제거되기도 한다.
그런데 어떤 세포는 그 과정을 피한다.
살아남는다.
다시 분열한다.
또 살아남는다.
그리고 어느 순간 주변 환경까지 자신에게 유리하게 바꾸기 시작한다.
도윤은 화면을 오래 바라봤다.
그가 상상했던 암과 달랐다.
도윤의 머릿속에서 암은 작은 악당 하나였다.
어디선가 침입해 들어온 검은 세포.
찾아내서 없애기만 하면 되는 존재.
그런데 실제 이야기는 훨씬 복잡했다.
하나의 세포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수많은 방어선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거나,
그 방어선을 피해가는 과정이 있었던 것이다.
도윤은 노트에 적었다.
암세포가 생긴 것
그리고 그 아래,
암세포가 살아남은 것
두 문장을 한참 바라보았다.
같은 말이 아니었다.
며칠 뒤 검사 때문에 병원에 갔다.
대기실에서 한 중년 남자가 아내와 이야기하고 있었다.
“수술로 떼어냈다는데 왜 또 검사해?”
아내가 말했다.
“의사 선생님이 재발할 수도 있대.”
남자는 투덜거렸다.
“그럼 떼어낸 게 끝이 아니야?”
도윤의 귀가 그 말에 꽂혔다.
떼어낸 게 끝이 아니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자신도 그렇게 생각했다.
암 덩어리를 찾아서 제거하면 끝이라고.
범인을 잡으면 사건이 끝나는 것처럼.
도윤은 자신의 목을 만졌다.
아직도 작은 덩어리가 느껴졌다.
그 순간 처음으로 이상한 질문이 떠올랐다.
종양은 암의 원인일까?
아니면
암이 만들어낸 결과일까?
그날 밤 도윤은 노트를 다시 펼쳤다.
맨 위에 크게 썼다.
범인을 찾아라
그리고 그 밑에 지금까지 의심했던 것들을 적었다.
술.
스트레스.
야근.
바이러스.
유전.
환경.
생활습관.
한참 바라보다가 모두 줄을 그었다.
그리고 새 문장을 적었다.
혹시 범인은 하나가 아닐지도 모른다.
그 순간 이상하게 마음이 더 불편해졌다.
범인이 한 명이면 잡으면 된다.
한 가지 원인이면 없애면 된다.
그런데 수많은 요인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면?
암세포 자체보다
그 암세포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몸 전체를 봐야 한다면?
그건 훨씬 어려운 문제였다.
도윤은 의사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그때는 무책임한 말처럼 들렸다.
지금은 조금 다르게 들렸다.
그날 새벽.
도윤은 잠들지 못했다.
몸 안을 상상했다.
수십조 개의 세포가 움직이고 있었다.
어디선가 이상한 세포 하나가 생긴다.
몸은 그것을 발견한다.
없앤다.
또 다른 세포가 생긴다.
또 없앤다.
그런 일이 수도 없이 반복된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하나를 놓친다.
그리고 또 하나를 놓친다.
놓친 세포가 살아남는다.
주변으로 퍼져간다.
도윤은 눈을 떴다.
이제 질문은 조금 달라져 있었다.
누가 암을 만들었을까?
그것보다 더 무서운 질문.
왜 내 몸은 그것을 계속 허용했을까?
그는 아직 몰랐다.
훗날 자신이 한 나라를 바라보면서도
똑같은 질문을 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왜 저런 사람이 생겼을까?”가 아니라
“왜 우리는 저런 사람이 계속 살아남도록 허용했을까?”
그 질문은 아직 멀리 있었다.
하지만 방향은 이미 바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