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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소설1 / 15편4분

《면역》

1편: 스물아홉

이타인클럽 · 2026.09.27

한도윤은 스물아홉 살이었다.

그 나이에 죽음을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정확히 말하면, 죽음은 도윤에게 뉴스 속 단어였다.

유명 배우가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기사. 친구 아버지가 수술을 받았다는 이야기. 회사 부장님의 건강검진 결과가 좋지 않다는 소문.

그런 것들은 모두 자신의 삶에서 조금 떨어져 있었다.

월요일 아침이면 출근해야 했고, 금요일 밤이면 술 약속이 있었으며, 이번 인사평가에서 대리를 달 수 있을지가 훨씬 중요한 문제였다.

그래서 목 오른쪽에 작은 혹이 만져졌을 때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피곤해서 그런가.”

한동안 야근이 많았다.

주말마다 술도 마셨다.

운동은 몇 달째 하지 않았다.

며칠 지나면 없어질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없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조금 커졌다.

회사 근처 병원에 갔다.

의사는 혹을 몇 번 만져보더니 말했다.

“큰 병원에서 한번 검사해보시는 게 좋겠습니다.”

그 말까지도 도윤은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요즘 의사들은 혹시 몰라서 다 검사를 시킨다고 생각했다.

회사 단체 채팅방에 메시지를 남겼다.

‘병원 때문에 오전 반차 씁니다.’

팀장은 엄지손가락 이모티콘 하나를 보냈다.

그게 도윤의 평범했던 마지막 오전이었다.

검사는 생각보다 많았다.

피를 뽑았다.

CT를 찍었다.

몸 안에 약물이 들어갔다.

커다란 기계 안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면서도 도윤은 저녁에 뭘 먹을지 생각했다.

검사가 끝나자 간호사가 말했다.

“보호자분하고 같이 오셨어요?”

도윤은 웃었다.

“아뇨. 저 혼자인데요.”

간호사는 잠시 도윤을 바라보았다.

그 짧은 침묵이 이상하게 마음에 걸렸다.

며칠 뒤 조직검사를 했다.

그리고 다시 며칠이 지났다.

의사는 모니터를 바라보며 무언가를 확인하고 있었다.

도윤은 의사보다 먼저 입을 열었다.

“괜찮죠?”

의사가 고개를 돌렸다.

잠시 말을 고르는 것 같았다.

“한도윤 씨.”

도윤은 그 순간 처음으로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사람은 자신의 이름이 불리는 방식만으로도 다음 말을 예상할 수 있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검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의사는 모니터를 도윤 쪽으로 조금 돌렸다.

화면에는 알 수 없는 사진들이 있었다.

회색과 검은색.

그리고 작은 흰 덩어리들.

“림프종입니다.”

도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의사가 설명을 이어갔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목소리가 멀어졌다.

림프절.

항암치료.

추가 검사.

치료 계획.

몇 개의 단어만 귀에 들어왔다.

도윤이 물었다.

“암이라는 말씀이세요?”

“네.”

도윤은 자기도 모르게 웃었다.

황당할 때 나오는 웃음이었다.

“제가요?”

의사는 대답하지 않았다.

“저 스물아홉인데요.”

그 말을 하고 나서야 자신이 얼마나 이상한 질문을 했는지 알았다.

스물아홉이라는 나이가 암을 막아주는 방패라도 되는 것처럼.

병원을 나왔을 때 세상은 너무 평범했다.

횡단보도에서는 사람들이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배달 오토바이가 지나갔다.

커피숍 앞에서는 두 사람이 웃고 있었다.

휴대전화에는 회사 메신저 알림이 열일곱 개 쌓여 있었다.

팀장이 메시지를 보냈다.

‘검사 잘 끝났어? 오후 회의 자료 확인 부탁.’

도윤은 한참 그 문장을 바라봤다.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아주 중요한 일이었다.

이제 아무 의미가 없었다.

그는 처음으로 회사에 거짓말을 했다.

‘검사가 조금 늦어져서 오늘은 쉬겠습니다.’

그리고 휴대전화를 껐다.

집에 돌아오자 가장 먼저 검색창을 열었다.

29살 림프종

검색.

20대 암 원인

검색.

림프종 생존율

검색.

림프종 완치

검색.

손가락이 계속 움직였다.

무섭다는 생각보다 먼저 든 것은 억울함이었다.

왜 나지?

나는 담배도 피우지 않았다.

가끔 술을 마셨지만 주변 사람들도 다 마셨다.

부모님도 건강했다.

운동을 안 하긴 했지만 스물아홉 살 직장인 중 운동을 안 하는 사람이 자신뿐인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왜 자신인가.

도윤은 검색어를 지웠다.

그리고 다시 입력했다.

암은 왜 생기는가

수많은 글이 나타났다.

유전.

환경.

바이러스.

생활습관.

면역.

우연한 돌연변이.

읽을수록 더 혼란스러웠다.

그가 원한 것은 간단한 답이었다.

범인.

누가 자기 몸을 이렇게 만들었는지 알고 싶었다.

그것만 찾아내면 될 것 같았다.

없애버리면 될 것 같았다.

그러면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도윤은 새벽 세 시가 넘도록 화면을 바라봤다.

그리고 어느 글에서 한 문장을 발견했다.

‘우리 몸에서는 끊임없이 비정상적인 세포가 생긴다.’

도윤의 손가락이 멈췄다.

그는 그 문장을 다시 읽었다.

한 번.

두 번.

세 번.

이상했다.

암세포가 생기는 것이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면,

자신이 물어야 할 질문은

‘왜 암세포가 생겼을까?’가 아닐지도 몰랐다.

창밖으로 새벽 도시가 보였다.

수천 개의 창문에 불이 켜져 있었다.

도윤은 문득 생각했다.

그렇다면 왜 내 몸은 그것을 막지 못했을까?

그 질문이

도윤의 몸을 향한 첫 번째 질문이었다.

그리고 훗날,

그 질문은 한 나라를 향한 질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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