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윤은 어느 순간부터 몸을 장기별로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처음 암에 걸렸을 때만 해도 달랐다.
목에 혹이 있었다.
그러니 목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림프절에 암이 있었다.
그러니 그곳만 치료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치료를 받으며 알게 됐다.
몸은 그렇게 나뉘어 있지 않았다.
피는 온몸을 돈다.
림프는 연결되어 있다.
호르몬은 멀리 떨어진 장기에 신호를 보낸다.
폐가 나빠지면 심장이 힘들어진다.
간이 망가지면 온몸이 영향을 받는다.
한 장기의 문제가
한 장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몸은 수십 개의 부품을 모아놓은 기계가 아니었다.
하나의 연결된 생명체였다.
그날 진료실에서 의사가 혈액검사 결과를 설명했다.
“간 수치는 괜찮고요.”
다음 화면.
“신장 기능도 보고 있습니다.”
도윤이 물었다.
“제 암은 림프종인데 왜 간이랑 신장까지 계속 봐요?”
의사가 말했다.
“치료가 몸 전체에 영향을 주니까요.”
“항암제가 암세포한테만 가는 게 아니잖아요.”
도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네요.”
의사는 말했다.
“암을 치료한다고 다른 장기를 망가뜨리면 안 되니까 계속 같이 보는 겁니다.”
그 문장이 오래 남았다.
하나를 살리려다가 다른 것을 망가뜨리면 치료라고 할 수 있을까?
병원을 나온 도윤은 카페에 앉았다.
휴대전화를 열었다.
정치 뉴스가 쏟아지고 있었다.
예전 같으면 각각 다른 사건으로 봤을 기사들이었다.
경제 기사.
수사기관 기사.
언론 보도 논란.
기업 문제.
정치권 갈등.
도윤은 문득 화면을 멈췄다.
그리고 노트를 펼쳤다.
가운데 동그라미 하나를 그렸다.
정치
옆에 하나.
경제
또 하나.
언론
법
행정
시민
예전에는 각각 따로 생각했다.
정치는 정치인들 문제.
경제는 기업 문제.
법은 법조인 문제.
언론은 기자 문제.
자신은 그냥 회사 다니며 월급 받는 사람.
그런데 선을 하나씩 그어보니
모든 원이 연결됐다.
정치가 법을 만든다.
법은 기업 활동의 경계를 만든다.
기업은 광고비를 쓴다.
광고비는 언론의 수입이 된다.
언론은 시민이 보는 정보를 만든다.
시민은 그 정보를 바탕으로 판단한다.
그 판단이 다시 정치로 돌아간다.
도윤은 원들을 한참 바라봤다.
선을 더 그렸다.
곧 종이가 거미줄처럼 변했다.
“전신이네.”
도윤이 혼잣말했다.
그 순간 예전에 공부했던 암 전이 그림이 떠올랐다.
작은 종양 하나.
혈관.
림프관.
다른 장기.
암세포는 아무 길이나 이용하는 것이 아니었다.
몸이 원래 가지고 있던 연결망을 이용했다.
도윤은 사회도 비슷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잘못된 정보 하나가 언론을 통해 퍼진다.
그 정보를 사람들이 믿는다.
사람들의 분노가 정치적 힘이 된다.
정치적 힘이 제도를 바꾼다.
바뀐 제도가 다시 경제와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준다.
반대 방향도 가능했다.
돈이 정보에 영향을 주고,
정보가 판단에 영향을 주고,
판단이 권력에 영향을 주고,
권력이 다시 돈의 흐름에 영향을 준다.
도윤은 노트 한가운데 크게 적었다.
순환
병도 순환을 이용한다.
건강도 순환을 이용한다.
며칠 뒤 준호를 만났다.
준호가 도윤의 노트를 보더니 말했다.
“너 이러다 논문 쓰겠다.”
도윤이 웃었다.
“이상하지 않냐?”
“뭐가?”
“사회 문제가 왜 하나씩 안 끝나는지.”
준호가 커피를 마셨다.
도윤이 그림을 보여줬다.
“언론 문제를 고치면 끝날 것 같잖아.”
“응.”
“근데 언론은 광고에 영향을 받고.”
“기업은 정책에 영향을 받고.”
“정책은 정치가 만들고.”
“정치는 시민 선택의 영향을 받고.”
“시민은 다시 언론에서 정보를 받고.”
준호가 그림을 바라봤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네.”
“그런 셈이지.”
도윤이 말했다.
“그래서 하나만 떼서 볼 수가 없는 것 같아.”
준호가 웃었다.
“너 이제 진짜 정치에 빠졌구나.”
도윤은 고개를 저었다.
“정치에 빠진 게 아닌 것 같아.”
“그럼?”
도윤은 잠시 생각했다.
“내가 사는 몸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보는 거지.”
그날 밤 도윤은 이재명의 영상을 하나 보았다.
화면 속 정치인이 제도와 구조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도윤은 예전과 다른 시선으로 영상을 봤다.
전에는 그가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알고 싶었다.
그다음에는
그가 사회를 고칠 수 있는 사람인지 알고 싶었다.
이제는 질문이 조금 달랐다.
한 사람이 이 연결망 어디까지 바꿀 수 있을까?
도윤은 영상을 멈췄다.
정치인이 법을 바꾸려고 해도
국회가 필요했다.
제도를 바꾸려고 해도
공무원이 움직여야 했다.
정책을 시행하려면
예산이 필요했다.
그것을 시민이 알아야 했고,
언론이 전달해야 했다.
법적 다툼이 생기면
법원이 판단했다.
도윤은 처음으로 깨달았다.
대통령이든,
정치인이든,
누구든,
한 사람이 나라를 움직이는 것이 아니었다.
국가는 하나의 거대한 몸이었다.
그리고 그 몸에는
수많은 장기가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도윤은 이상한 장면을 보았다.
한 가지 제도를 바꾸자는 이야기가 나오자
전혀 다른 곳에서 반발이 일어났다.
정치권에서 논쟁이 생기고,
언론에서는 서로 다른 해석이 나왔고,
이해관계를 가진 집단들이 목소리를 냈고,
시민들 사이에서도 갈등이 커졌다.
도윤은 누가 옳고 그른지를 즉시 판단하려 하지 않았다.
대신 생각했다.
왜 하나를 건드렸는데 이렇게 많은 곳이 반응하지?
그러다가 답을 찾았다.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몸도 그랬다.
한곳에 약을 넣으면
온몸이 반응했다.
암세포만 죽는 것이 아니었다.
정상세포도 영향을 받았다.
면역도 변했다.
식욕도 떨어졌다.
머리카락도 빠졌다.
전신 치료에는 전신 반응이 따라왔다.
그날 도윤은 항암치료가 가장 힘들었던 밤을 떠올렸다.
몸이 떨렸다.
입맛이 사라졌다.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그때는 약이 자신을 망가뜨리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날 검사 결과가 좋아졌다.
몸은 힘들었지만
병은 줄어들고 있었다.
도윤은 생각했다.
변화라는 것은 언제나 편안하게 오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동시에 다른 생각도 했다.
아프다고 해서 모든 치료가 옳은 것은 아니다.
항암치료도 아무 약이나 쓰지 않는다.
효과를 확인하고,
부작용을 보고,
용량을 조절하고,
필요하면 치료법을 바꾼다.
중요한 것은 고통이 아니라
치료가 실제로 몸을 건강하게 만들고 있는가였다.
사회도 그래야 했다.
개혁이라는 이름만으로 모든 변화가 옳다고 할 수는 없다.
누가 추진했는지가 아니라
무엇이 바뀌었고,
어떤 결과가 나타났고,
사회 전체가 더 건강해졌는지를 봐야 했다.
도윤은 처음으로 그 기준을 자신의 노트에 적었다.
사람이 아니라 결과를 본다.
그 문장을 적고 나니
이상하게 마음이 편해졌다.
이재명이든 누구든 마찬가지였다.
구세주라고 생각했다고 해서
모든 선택이 옳다고 믿을 필요는 없었다.
오히려 건강한 사회라면
치료자 역시 감시받아야 했다.
의사도 검사를 본다.
다른 의사의 의견을 듣는다.
치료 결과가 좋지 않으면 방법을 바꾼다.
누구도 환자의 몸보다 위에 있지 않다.
정치도 그래야 하지 않을까.
도윤은 ‘구세주’라고 적어놓은 페이지를 펼쳤다.
그 단어를 지우지는 않았다.
대신 옆에 작은 문장을 적었다.
구세주도 면역체계의 일부다.
그리고 한참 생각하다 하나를 더 썼다.
몸보다 위대한 세포는 없다.
며칠 뒤 회사에 복귀한 도윤은 출근길 지하철에서 사람들을 바라봤다.
학생.
회사원.
노인.
배달기사.
간호사.
공무원.
자영업자.
모두 다른 곳으로 가고 있었다.
예전에는 그저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지금은 조금 다르게 보였다.
각자 하나의 세포 같았다.
어떤 사람은 정보를 만든다.
어떤 사람은 법을 집행한다.
어떤 사람은 물건을 만든다.
어떤 사람은 아이를 가르친다.
어떤 사람은 환자를 치료한다.
그중 하나가 없어도 사회는 당장은 돌아갈 것이다.
하지만 수많은 세포가 자기 역할을 포기하면?
도윤은 지하철 창문에 비친 도시를 바라봤다.
거대한 몸이 움직이고 있었다.
그날 저녁,
뉴스에서는 또 거센 정치적 충돌이 벌어지고 있었다.
사람들은 편을 나눠 싸웠다.
도윤은 예전처럼 흥분하지 않았다.
화면을 보면서 생각했다.
누가 이기느냐.
누가 지느냐.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었다.
이 싸움이 몸을 더 건강하게 만드는가.
도윤에게는 이제 그것이 기준이었다.
집에 돌아온 그는 노트를 펼쳤다.
한 페이지 전체에 사람 몸을 그렸다.
그 위에 사회의 기관들을 하나씩 적었다.
뇌.
정치.
눈과 귀.
언론.
면역.
법과 감시기관.
혈액.
경제.
신경.
행정.
세포.
시민.
그림은 완벽하지 않았다.
비유도 정확히 일치하지 않았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었다.
도윤은 맨 아래에 적었다.
한 장기의 병은 결국 전신의 문제가 된다.
그리고 잠시 후,
그 아래에 썼다.
한 장기의 회복만으로 전신이 건강해지는 것도 아니다.
마지막 한 줄.
치료해야 할 것은 나라의 한 부분이 아니라, 서로 연결된 관계였다.
도윤은 펜을 내려놓았다.
이제 그에게 사회의 병은
한 사람의 얼굴도,
한 기관의 이름도 아니었다.
더 거대하고,
더 복잡하고,
훨씬 어려운 것이었다.
그리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한 사람의 구세주만으로는
절대로 치료할 수 없는 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