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검사에서는 암이 보이지 않습니다.”
의사의 말이 끝났는데도 도윤은 바로 반응하지 못했다.
진료실 모니터에는 몇 달 전 사진과 오늘 찍은 사진이 나란히 떠 있었다.
처음에는 분명히 보였다.
목.
가슴.
몸 곳곳에 찍혀 있던 흔적들.
그런데 지금 화면에서는 거의 찾을 수 없었다.
도윤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러면…”
입안이 말랐다.
“완치된 건가요?”
의사는 잠시 생각했다.
그리고 말했다.
“지금은 완전 관해라고 표현하는 게 맞겠습니다.”
도윤은 처음 듣는 단어처럼 되물었다.
“관해요?”
“검사에서 암의 징후가 보이지 않는 상태입니다.”
도윤의 얼굴에 천천히 웃음이 번졌다.
“그럼 끝난 거네요.”
의사가 웃었다.
하지만 도윤은 이제 알고 있었다.
의사가 그렇게 웃을 때는
대개 다음 문장이 있다는 것을.
“추적 검사는 계속해야 합니다.”
역시 그랬다.
병원을 나오자 하늘이 눈부셨다.
도윤은 한참 병원 앞에 서 있었다.
사람들이 지나갔다.
택시가 들어오고,
환자들이 내리고,
누군가는 휠체어를 밀고,
누군가는 울었고,
누군가는 웃었다.
도윤은 휴대전화를 꺼내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어머니의 목소리가 급했다.
“어떻게 됐어?”
도윤은 일부러 잠시 말을 아꼈다.
그리고 웃었다.
“안 보인대.”
전화기 너머가 조용해졌다.
잠시 뒤 어머니가 울기 시작했다.
도윤도 웃다가 눈물이 났다.
몇 달 동안
처음으로 마음 놓고 울었다.
그날 저녁 준호와 민석이 작은 고깃집에 모였다.
준호가 잔을 들었다.
“한도윤 생환 기념.”
도윤이 웃었다.
“나 죽은 적 없어.”
민석이 말했다.
“회사에서는 거의 죽은 사람 취급했어요.”
“너 인사평가 기대하지 마.”
셋이 웃었다.
몇 달 만에 마시는 평범한 저녁이었다.
회사 이야기.
연애 이야기.
축구 이야기.
새로 나온 휴대전화 이야기.
정치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암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
도윤에게 그게 오히려 좋았다.
평범한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이
이렇게 행복한 일인지 몰랐다.
며칠이 지나자 삶은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원래 모습을 되찾았다.
아침 알람.
만원 지하철.
커피.
회의.
점심 메뉴 고민.
퇴근.
유튜브.
잠.
처음에는 모든 것이 감사했다.
그러다 한 달쯤 지나자 다시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출근하기 싫었다.
회의는 길었다.
팀장은 여전히 피곤했다.
지하철은 붐볐다.
도윤은 어느 날 아침 회사로 가다가 혼잣말했다.
“사람 참 간사하네.”
몇 달 전에는
이 지하철을 다시 타는 것만으로도 행복할 것 같았다.
그런데 인간은 다시 일상에 적응했다.
좋은 일이었다.
살아 있다는 뜻이니까.
그러던 어느 날,
도윤의 휴대전화에 병원 알림이 왔다.
추적검사 예약일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몇 달 동안 잊고 있던 단어가 다시 떠올랐다.
재발.
도윤은 휴대전화를 잠시 바라봤다.
암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몸을 잊어도 된다는 뜻은 아니었다.
검사를 받아야 했다.
몸의 신호를 살펴야 했다.
이상이 생기면 다시 확인해야 했다.
그렇다고 매일 암을 두려워하며 살아갈 수도 없었다.
도윤은 그 차이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감시와 공포는 다르다.
건강을 지키는 것은
매일 죽음을 의심하는 일이 아니었다.
평범하게 살아가되,
이상 신호가 왔을 때 외면하지 않는 일이었다.
그날 오후 회사에서 작은 일이 있었다.
민석이 도윤에게 자료 하나를 보여줬다.
“형, 이 수치 이상하지 않아요?”
예전 같았으면
“뭐, 누가 알아서 보겠지.”
하고 넘겼을 수도 있었다.
도윤은 자료를 함께 확인했다.
계산식 하나가 잘못되어 있었다.
단순한 실수였다.
둘은 수정했다.
끝.
누구도 처벌받지 않았다.
누구도 악인이 아니었다.
도윤은 그 장면에서 묘한 안도감을 느꼈다.
이상이 발견됐고,
확인했고,
고쳤다.
그뿐이었다.
모든 이상에 악인이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건강한 시스템은
누군가를 공격하기 전에
먼저 이상을 확인하고 수정할 수 있어야 했다.
도윤은 그 점도 새롭게 배웠다.
그날 밤 뉴스를 보다가도 같은 생각을 했다.
사회에서는 매일 문제가 생겼다.
거짓말도 생겼다.
실수도 생겼다.
범죄도 생겼다.
권력을 탐하는 사람도 나타났다.
잘못된 판단도 나왔다.
예전의 도윤이었다면
건강한 사회라면 그런 일들이 없어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몸은 그 생각을 바꿔놓았다.
건강한 몸에서도 오류는 생긴다.
세포는 손상된다.
바이러스는 침입한다.
염증도 생긴다.
중요한 것은
아무 일도 생기지 않는 것이 아니었다.
발견하는 것.
대응하는 것.
회복하는 것.
그리고 필요하면
배우는 것.
도윤은 오랜만에 자신의 노트를 처음부터 펼쳐봤다.
첫 페이지.
왜 나한테 암이 생겼을까?
다음 페이지.
왜 내 몸은 그것을 막지 못했을까?
그다음.
사회에도 면역체계가 있을까?
전이.
조직검사.
구세주.
절제술.
재발.
전신.
촉매.
면역세포.
몇 달 동안 질문이 계속 바뀌었다.
처음에는 범인을 찾았다.
그다음에는 구세주를 찾았다.
하지만 결국 자신이 찾은 것은
범인도,
구세주도 아니었다.
건강이 무엇인가였다.
도윤은 새 페이지를 펼쳤다.
맨 위에 적었다.
관해
그리고 그 아래에 썼다.
병이 다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약속이 아니다.
잠시 생각했다.
지금 병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
또 썼다.
그리고 앞으로도 몸을 살피겠다는 약속.
도윤은 펜을 멈췄다.
그 문장이 사회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 같았다.
어느 선거에서 이겼다고
사회가 영원히 건강해지는 것은 아니다.
어떤 제도를 고쳤다고
다시는 문제가 생기지 않는 것도 아니다.
어떤 정치인이 등장했다고
사회의 병이 영원히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좋은 사람도 변할 수 있고,
좋은 제도도 낡을 수 있으며,
건강했던 기관도 병들 수 있다.
그래서 계속 봐야 했다.
기록하고,
확인하고,
견제하고,
잘못됐으면 고치고,
고친 것이 제대로 작동하는지도 다시 봐야 했다.
그것은 불신이 아니었다.
도윤에게 그것은 이제
건강관리였다.
그는 예전에 적었던 이름을 발견했다.
이재명
그 옆에는 이제
촉매
라고 적혀 있었다.
도윤은 그 단어를 지우지 않았다.
누군가는 질문을 시작하게 만들 수 있다.
누군가는 사람들이 움직이는 계기가 될 수 있다.
하지만 그 사람까지도
사회라는 몸 안에 존재했다.
그 역시 보고,
평가하고,
잘못하면 바로잡아야 하는
하나의 구성원이었다.
도윤은 그 아래에 적었다.
건강한 몸에는 예외가 없다.
어떤 세포도 몸보다 위에 있지 않았다.
다음 추적검사 날.
도윤은 예전처럼 떨지 않았다.
물론 두려웠다.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손바닥에 땀이 났다.
하지만 이제 두려움의 의미가 달랐다.
두렵기 때문에 보지 않는 것이 아니라,
두렵기 때문에 확인했다.
의사가 말했다.
“좋습니다.”
도윤이 웃었다.
“다음 검사는 언제예요?”
몇 달 뒤 날짜를 잡았다.
진료실을 나오면서 도윤은 생각했다.
예전 같으면
“이걸 언제까지 해야 하지?”
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제는 아니었다.
살아 있는 동안 하는 것이다.
몸을 가진 동안
몸을 돌본다.
사회를 이루며 사는 동안
사회를 돌본다.
끝나는 일이 아니었다.
그날 퇴근길.
도윤은 횡단보도 앞에 서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신호를 기다렸다.
누군가는 뉴스를 보고 있었고,
누군가는 게임을 하고 있었으며,
누군가는 아이의 손을 잡고 있었다.
예전의 도윤도 저들 중 하나였다.
정치가 자신과 무슨 상관이냐고 생각하던 사람.
도윤은 이제 그 질문의 답을 알고 있었다.
사회는 자신이 잠깐 빌려 쓰는 무언가가 아니었다.
그 안에서 먹고,
일하고,
치료받고,
사랑하고,
늙어갈 곳이었다.
말 그대로
자신이 살아가는 몸이었다.
신호가 바뀌었다.
사람들이 움직였다.
도윤도 그들과 함께 걸었다.
그는 더 이상 세상을 구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완벽한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도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한 가지는 믿었다.
건강은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유지되는 것이다.
몸도.
사회도.
그리고 민주주의도.
도윤은 사람들 사이를 걸어갔다.
평범한 회사원으로.
암 환자였던 사람으로.
그리고 이제는
자신도 이 거대한 몸의
작은 면역세포 하나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으로.